철학

요가는 인간 본질의 신체적, 정신적인 여러 요소들에 대한
제어를 통하여 완전을 얻고자 하는 방법적인 노력이다.

인도철학의 특징과 요가

인도철학의 공통된 특징(서로 다른 성질의 화합)은 다음과 같다.

1. 사상은 역사의 산물이며, 흔히 철학은 세계와 인생에 대한 문제를 탐구하여 이를 한 원리에 의해서 통일적으로 해석하려는 체계이지만, 인도에 있어서는 그들의 철학적인 사변(思辨)이 그들의 신화와 종교적인 행사에서 비롯되면서 철학사상을 낳았으므로 사상과 생활실천이 일치된 철학사상이 전개된다.

2. 비논리적인 종교와 논리적인 철학이 일치됨 : 초인적인 신앙심과 합리적 구도심이 조화를 이룬다. 철학이 곧 종교이고 이상이 곧 현실이며 논리적이면서 실천적이다.

3. 절대자의 성격이 합리적이고 인간적임 : 절대자도 마음대로 法(진리)를 어길 수가 없고 법을 따르며 사람이 법을 깨달으면 신이 된다.

4. 이미 있는 것이 진리(Pramana)이고 베다경전이 인도철학의 원천이 된다.

5. 윤회사상(Samsara)과 니르바나(Nirvana : 극락세계)가 공통점이다. : 생과 사의 반복적 화합과 생의 고통과 사후의 극락을 화합시킨다.

6. 마야(Maya : 환상)를 벗어나려는 진리탐구와 자아실현의 방법과 괴로움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모든 철학과 종교가 요가를 공통으로 실행한다.

7. 몸과 마음이 완전히 균형상태로 안정될 때의 직관(直觀)을 통해서 얻어진 지혜가 진리라고 믿는다. 직관에 의한 지혜란 심신의 여러 조건이 균형상태(서로 다른 성질의 균형적 조화 : 相應)가 이루어졌을 때 즉 어떠한 집착이나 편견도 없이 전체적 이해가 열리어 대상의 실상과 합일함으로써 부분적인 이해가 동기가 되는 것이 아니고 전체적인 이해의 종합으로 인해 순수정신(Purusa)의 내면적 영감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또는 정신집중의 대상과 합일하는 三昧(삼매)의 경지에서 그 대상이 어떤 것인가를 저절로 아는 것을 직관에 의한 앎이라 한다.

8. 하나의 사실을 두 가지 성질로 느끼며 두 가지 서로 다른 성질을 하나의 사실로 묶어서 통합한다. 즉 하나이면서도 둘이고 둘이면서도 하나이다. One in all이고 All in one이다. 또는 一卽一切(하나가 곧 일체의 전부)이고 一切卽 一(일체의 전부가 곧 하나)이다.

9.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작용하고 몸이 원하는 대로 마음이 작용할 때 즉 서로 다른 성질이 서로 통하여 자유자재의 상태(요가의 경지)일 때가 건강의 조건이 가장 높고 아름다우며 큰 행복과 높은 가치의 삶이라고 믿는다.

10. 인도의 3大神은 본질과 창조를 맡고 있는 브라만신(Brahman), 유지변환의 비슈누신(Vihnu), 파괴와 소멸을 맡아하는 시바신(Siva)이다. (요가는 시바가 창시자라는 전설이 있으므로 고대 인더스 문명의 출토품중에 요가좌법의 상을 시바神像(신상)으로 명명하였음. 특히 시바신을 숭상하는 유파들에 의해 요가가 더욱 연구발전 되었음.)

11. 인도인의 이상적인 삶은 40세 이전에 자식을 낳고 키워서 가업을 물려주고, 40세가 되면 출가하여 요가 아쉬람(Ashram : 스승의 휴식처)에 들어가 자연의 신비한 진리와 삶의 고차원적 승화를 추구하는 구도자(求道者 : Sannyas)가 되는 것이다. 최상류층인 브라만(Brahman)계급의 전통이며, 요가수행을 통해 성자가 되고 삶의 스승이 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고 최고의 성취라고 느낀다. 따라서 요가수도를 통해 인도의 큰 스승과 성자 또는 종교의 모든 창시자가 배출되고 있으므로 요가는 종교의 태반이고 생활실천철학의 근본 뿌리이다.

12. 서양의 사상이 신과 인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한데 비해 인도사상은 항상 우주전체를 통일적이면서 다양하게 전개시킴으로써 내용의 다양성과 해탈이라는 목표의 동일성인 "다양성속의 통일"을 추구한다.

육파철학과 요가학파

  • 육파철학(哲學)
  • 인도철학의 핵심은 6파 철학이며, B.C 600 ~ 100사이에 시작되어 AD 400년경에 절정을 이루었던 힌두이즘(Hinduism)의 철학적 흐름이 6파 철학이다. 이 유파(流波)들은 각기 다른 논리와 유사성으로 서로 상호 보완과 공통성을 갖으며, 베다경전을 보편적인 삶의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베타(Veda)경전을 그대로 따르자는 학파가 미맘사(Mimamsa)학파철학과 베단타(Vedanta)학파 철학이었으며, 베다경전을 다소 수정하여 만든 우파니샤드(Upanisad)를 따르자는 학파가 샹키야(Samkhya)학파 철학과 요가(Yoga)학파 철학이고 베다나 우파니샤드를 논리적으로 분석하여 오해를 없애는 것을 주장하는 학파가 니야야(Nyaya)학파 철학과 바이세이시카(Vaiseisika)철학파였다. 인도철학을 종합하면 요가철학으로 귀결된다.

    1) 샹키야(Samkhya)학파 : 개조(開祖) - 카필라(Kapila : BC350~250경)
    우주적인 본질에 관한 사유가 형이상학적인 원리와 형이하학적 실체를 인식하는 방법으로써 신(神)들의 가르침이라는 베다(Veda)적으로 고정된 시각에서 탈피하여 상이한 인간중심의 철학인 유일한 실체에 대한 2가지 근원적 원리를 상정하고 있다. 순수정신 푸루샤(Purusa)와 미분화된 물질의 근본원질 프라크리티(Prakrti)가 그것이다. 순수정신 푸루샤는 실체로서의 개아(個我)이며, 그 본질은 지(知 : Jna)또는, 사(思 : Cit)이며, 어떤 활동도 없이 근본원질을 관조할 뿐이다. 물질의 근원이며, 자연(自然) 그 자체인 프라크르티(Prakrti)는 활동성의 성질을 가진 3 구나(Gunas) 즉, 순질(淳質)의 사트바(Sattva), 동질(動質)의 라자스(Rajas), 예질(?質)의 타마스(Tamas)에 의하여 정지된 균형을 이루지만, 이 균형이 깨졌을 때 물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이로부터 근원적 사유기능인 마하트(Mahat), 또는 우주적 지성인 붓디(Buddhi)가 출현하여, '나'라는 자의식 아함카라(Ahamkara)가 생기고, 다섯 감각기관인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과 6가지 기능의 발성기관, 손, 발, 배설기관, 생식기관과 마음(意)이 생겨나며, 대상영역의 색(色), 성(聲), 미(味), 촉(觸), 향(香)의 5가지의 미세한 요소(Tanmatra)등을 합하여 25원리를 표방한다.
    해탈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지를 벗고 앎을 통한 지(知)의 확장으로 본다. 수행으로써 해탈했다 할지라도 현생의 업(業 : Karma)에 의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존재하며, 살아있는 동안의 완전한 자유감의 체험을 의미하는 지반묵티(Jivanmukti)라 부르고, 사후(死後) 육체에서 완전히 이탈(離脫)하였을 때를 비데하묵티(Videhamukti)라 한다. 순수정신(Purusa)이 육체에서 분리(分離)되었을 때를 완전한 독립(獨立), 해탈(解脫), 독존(Kaivalya)이라 한다.

    2) 요가(Yoga)학파 : 개조 - 파탄잘리(Patanjali : BC200경)
    요가의 수행에 의해서 해탈에 도달하는 것을 가르치는 학파이다. 인도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산림(山林)과 나무아래에서 정좌명상에 심취하는 것이 행해지고 있었다. 그 기원은 인더스(Indus) 문명 시대 원주민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명상의 경지를 체험하는 시도가 점차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실천적 수행의 바탕이 되었다. 요가학파에서는 파탄잘리(Patanjali)에 의하여 근본경전이 되는 요가수트라가 편찬되었다. 이 학파에는 불교의 영향도 찾아볼 수 있으나 상키야(Samkhya)학파의 이론을 공유한다. 단지 요가학파에서는 최고신(Isvara)을 인정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요가의 어의(語義)는 "마음의 통일을 이룬다는 것"이며, 요가수트라 1장 2절에는 마음작용의 지멸(止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외부적인 속박(束縛)을 벗어나는 동시에 내부적인 마음의 동요(動搖)도 멈추어야 한다.

    3) 베단타(Vedanta)학파 : 개조 - 바다라야나(Badarayana : BC100경)
    후대 인도의 철학 사상에서 가장 영향력을 크게 미쳤던 학파이다. 신(神)의 계시(啓示)라는 베다(Veda)적 영향력에서 인간 평등과 자각의 실현을 주장하고, 자기 노력에의한 완전한 성취를 표방한 불교와 자이나교 등의 영향을 받아 신(神)의 절대적 신앙심과 제의식(祭儀式)에서 발전하여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과 가치를 탐구(探究)한 힌두적인 사유(思惟)이다. 그러나 절대적 존재인 브라흐만(Brahman)을 인식함으로써 해탈(解脫)을 얻는다는 목적을 가진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이다. 베다의 끝이라는 의미로써 우파니샤드(Upanisad)와 동의어(同義語)이다.

    4) 미맘사(Mimamsa)학파 : 개조 - 쟈이미니(Jaimini : BC200~100경)
    미맘사학파는 베다(Veda) 성전(聖典)에 규정되어 있는 제사와 의례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한 학파이다. 종교(宗敎)적 이상을 실현하고자하는 방편으로 제의적인 실행을 강조하였다. 말과 의미와의 결합관계는 영구불변하고 개개인의 인식주관의 구분을 초월하여 성립한다. "진리는 항구적인 실재로써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일어나거나 인간이 결정한 것이 아닌 선천적인 것이며 베다의 가르침에 의하여만 진실하게 드러난다"고 주장한다.

    5) 바이세시카(Vaisesika)학파 : 개조 - 까나다(Kanada : BC150~50경)
    실체(實體), 성질(性質), 운동(運動), 보편(普遍), 특수(特殊), 내속(內屬)이라는 여섯 가지 원리의 본성을 진실로 이해한다면 지상의 행복을 얻을 수 있지만, 혼란한 마음으로는 진리를 얻을 수 없기에 요가의 실천 수행이 있어야함을 강조하며, 직접지각과 비교론에 근거하여 주장한 학파이다.

    6) 니야야(Niyaya)학파 : 개조 - 가우타마(Gautama : AD50~150경)
    괴로움의 원인이 무지와 오해 때문이라고 보아 그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은 바른 앎(正知)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불교에서는 논리학을 인명(因明)이라하는데 그것을 조직적으로 집대성한 학파가 니야야이며, 이론(理論), 논리라는 의미로서 후에는 연구학적인 일반호칭이 되었다. 진리는 이론에 의하여 탐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형이상학에 관한 부분은 바이세시카학파와 유사하다. 니야야학파가 강조한 것은 인식방법으로서 실제 가능한 논리로 연구하였고 이론적 논의(論議)의 합리성에 그 핵심이 있다.

  • 육파철학의 공통점과 추구
  • 1) 괴로움은 무엇 때문이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를 목표로 삼았다.
    2) 괴로움을 벗어나는 실천방법으로는 요가(Yoga)를 공통으로 채택하였다.
    3) 행복(幸福)이란 마음대로 몸이 작용하고 몸이 원하는 대로 마음이 작용할 때가 가장 크다고 하였다.
    4) 몸과 마음이 완전한 균형상태로 안정되어 있을때 직관(直觀)을 통해 얻어진 지혜가 진리(眞理)라고 주장한다.
    5) 한 가지 사실을 두 가지로 느낄 수 있는 의식의 확대(擴大), 안과 밖을 동시에 바라보는 통찰력과 전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 요가학파의 세계관(世界觀)
  • 베다적인 가르침이 신에게서 인간으로 내려지는 것에서 그 주체가 인간으로 바뀌는 시기는 만인평등을 주장한 불교(佛敎)와 자이나(Jaina)교 등의 등장과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힌두교의 변화과정에서 베다(Veda)의 끝이라 불리는 베단타(Vedanta)학파가 강조한 만유(萬有)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절대적인 힘을 아트만(Atman : 眞我)이라고 상정하였다. 같은 6파 철학으로 구분되는 샹키야(Samkhya)학파에서는 절대성과는 의미를 같이하지만 지배하거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우주적 순수정신(Purusa)을 설명하고 있으며, 요가에서는 이 두 가지 개념을 다 수용한다. 특히, 상키야(Samkhya) 학파의 이론적인 틀과 그 궤를 같이한다. 샹키야 학파에서는 초월적 세계에서 자연현상계가 생성될 때 푸루샤(Purusa : 純粹情神)와 프라크르티(Prakrti : 物的本質 , 自性)의 두 가지 형이상학적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만물의 전개는 변화의 속성인 3 구나(Gunas)가 동력원(動力源)이 되어 자연성(自然性)의 원인을 자극하면 자아의식(自我意識)인 아함카라(Ahamkara)는 이기적 특성을 갖고 반복 순환하는 윤회(輪廻)의 흐름을 갖는다. 프라크르티(Prakrti)가 현상으로 나타날 때는 사트바(Sattva), 라자스(Rajas), 타마스(Tamas)등 3가지 변화의 속성으로 전개되며 이러한 변화의 속성(屬性)을 가진 구나스(Gunas)가 어떤 비율로 결합하느냐에 따라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차이가 생긴다. 이 힘의 비율이 조화를 이룰 때는 비물질화 또는, 비활동의 상태인 아비야카(Avyakta)의 상태로 있으나 진화의 원리(Buddhi)에 상응하여 변화를 가지려 할 때는 라자스(Rajas)의 활동성에 의하여 균형이 깨어지고 타마스(Tamas)의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한 사트바(Sattva)적인 성향을 향해 만물은 태동하여 전개된다.
    이러한 만물의 생성과정과 동일하게 인간의 의식행위도 생멸(生滅)과정에서 예외일 수 없다. 요가철학의 이론적 원리와 상응(相應)하는 샹키야(Samkhya) 철학의 우주원리를 정리한 이론적 논거(論據)는 아함카라(Ahamkara) 즉, 자아의식(自我意識)은 사트바(Sattva)적인 요소가 강할 때 마나스(Manas : 의식(意識)와 인드리야(Indriya : 십근(十根)를 산출하고, 타마스(Tamas)적 힘이 지배적일 때는 탄마트라스(Tanmatras : 오유(五唯) 즉,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을 만들게 되며 이에 상응하여 부타(Bhuta : 五大)인 색(色), 성(聲), 미(味), 촉(觸), 향(香)이 생긴다고 설명한다.

  • 요가의 중심사상
  • 요가의 중심사상은 인도의 육파철학 중의 하나인 상캬 철학에서부터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으며, 이 세상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법으로 요가수행자의 관념이다.

    1) 전변론(轉變論)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자연물은 물론 인간의 육체와 마음까지도 이 변화의 속성에 있다고 보며, 이 변화는 씨앗이 싹을 키우고 그 열매를 맺고 다시 씨앗을 만들듯이 돌고 도는 윤회하는 우주적 원리 속에 있다는 사상으로써 요가를 수행하는 목표는 이 우주적 순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2) 인중유과론(因中有果論)
    원인과 결과는 하나의 긴 줄처럼 처음과 끝이 이미 결합되어 있으며 시간에 따른 상대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현상으로 드러난 상태일 뿐이며, 원인 속에 이미 결과가 들어 있기에 현실의 의식도 이미 잠재된 의식이 나타난 것이라는 사상이다.

    3) 실재론(實在論)적 인식론
    사물은 실재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관념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 인식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4) 부정론(否定論)적 인식론
    인도의 고전 철학체계 우파니샤드에 나타난 사상으로써 작은 것의 집착을 끊고 부분에 대한 끝없는 부정 즉, 네티(Neti-아니다)를 통하여 전체를 인식하고 나아가 현상계마저 부정함으로써 가장 최초의 자리로 소급하여 일체를 포함하고 수용하는 대통합에 이르는 길을 추구함으로써 진아(眞我)를 밝히는 것이다.

    5) 신인양본주의(神人樣本主意)
    절대적 신이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지배하면서 인간구원의 힘을 행사하는 신본주의와 신자신도 자신이 만든 현상계의 법칙과 원리를 그대로 따를 뿐이므로 신에 대한 무조건적 의존이 아닌 스스로 노력을 통해 신의 자연법칙과 원리를 깨달아 자신들의 괴로움을 해결하는 지혜를 획득하자는 인본주의를 융합, 절충한 것으로 이슈바라(Isvara)라고 하는 자기내면의 자재신의 개념은 진아(眞我 : Atman)을 신격화하여 효과적 요가수행을 견인하는 근원으로 본다.

파탄잘리의 요가철학

  • 요가는 일상적인 인간 경험에 부과된 한계들을 뛰어넘게 하는 심리기관의 변형을 통하여 우리가 보다 고차적인 의식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파탄잘리에게서 요가는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푸루샤와 프라크리티의 분리를 의미할 뿐이다. 그것은 또한 정진, 불굴의 노력을 의미하기도 하며, 따라서 감각과 마음을 제어하는 체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때로는 요가라는 말이 삼매의 절정에 대한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것은 삼매에 도달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말로 보다 빈번하게 사용된다. 파탄잘리에 의하면, 요가는 인간 본질의 신체적 , 정신적인 여러 요소들에 대한 제어를 통하여 완전을 얻고자 하는 방법적인 노력이다. 물질적인 몸, 활동적인 의지, 그리고 지각적인 정신은 제어되지 않으면 안 된다. 파탄잘리는 불안정한 육체를 치유하고 불순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의도된 어떤 실천 수행들을 주장한다. 우리가 이러한 실천들을 통하여 생기를 증장하고 젊음과 장수를 실현할 때, 이러한 것들은 정신적인 자유를 위하여 채택된다. 의식을 정화하고 잠잠하게 하기 위하여 여러 다른 방법들이 채택된다. 파탄잘리의 주된 관심은 형이상학적인 이론을 정립하는 것이 아니라, 해탈이 어떻게 수행에 의하여 실현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자 하는 실천적인 동기이다.

  • 요가 사상의 역사
  • 수행에 의하여 우리는 보통사람들에게는 발견되지 않는 여러 신체적 정신적인 힘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 신체적인 행위나 정신 작용에 대한 제어는 우리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인도에서 오래된 견해이다. 지고한 행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영원한 것에 잡아매기 위하여 세속적인 모든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파니샤드는 의식적인 내면성찰 혹은 실재에 대한 참된 지식의 추구라는 의미에서 요가를 받아들인다. 주체로서 자아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명상과 정신집중이 강조된다.
    우파니샤드는 고행과 금욕(brahmacarya)을 위대한 힘의 원천이 되는 공덕으로 간주한다. 붓다는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요가를 수행했다. 그는 금욕적 고행뿐만 아니라, 고도의 내적 성찰을 실천했다.
    '랄리타비스타라(Lalitavistara)'에 의하면 붓다의 시대에는 온갖 형태의 금욕적 고행이 유행하고 있었다. 알라라(Alara)와 같은 붓다의 몇몇 스승들은 요가에 정통했다.
    '마하바라타'에서 샹키야와 요가는 하나의 전체에 대한 보완적인 두 측면, 즉 이론과 실천 혹은 철학과 종교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된다. 파탄잘리의 요가는 당시에 다소 불명확하고 미 성숙된 형태로 존재하던 고행과 명상에 대한 개념들의 구체화이다. 그는 삶과 경험의 차원에서 전승되어온 막연한 전통을 성문화했다.

  • 샹키야와 요가
  • 파탄잘리는 요가의 개념들을 체계화 했으며, 샹키야의 형이상학적 배경에서 이 개념들을 설명했다. 초기 문헌들에서 요가 원리들은 샹키야의 개념들과 함께 나타난다.
    샹키야의 25원리들은 요가에 의하여 받아들여지며, 프라크리티의 전개에 관하여, 요가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즉 마하트로부터 시작하여 아함카라, 마나스, 5지각기관, 5행동기관으로 전개되는 한 방향과 마하트에서 시작하여 5탄마트라를 통하여 조대한 5요소들이 생겨나는 다른 한 방향이 있다. 사물의 참된 본질에 대한 무지는 욕망 등을 야기하며, 이것은 세계에서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의 근거가 된다 (참된 본질이란 집중과 명상을 해서 깨닫게 되면 알게된다. 소위 물질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이다.).
    샹키야의 경우처럼 요가에서도 온갖 고통을 수반하는 윤회는 벗어나야 하는 속박이며, 물질(pradhana, 이것이 참된 본질을 가리는 무지가 된다)과 자아의 결합은 윤회의 원인이다. 이 결합의 파괴는 속박에서 벗어남이며, 완전히 깨닫게 되면 통찰력이 생긴다. 요가는 보통은 결합으로 알고 있다. 해탈은 푸루샤와 프라크리티 사이의 분별(요가와 샹키야를 연결할 때면)에 의하여 얻어지는, 프라크리티로부터 푸루샤의 분리이다.
    샹키야는 지식이 해탈의 수단이라고 주장하는데 비하여 요가는 정신 집중과 활동적인 노력을 강조한다. 요가는 활동적인 노력 혹은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정신으로 행하는 의무에 충실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샹키야는 논리적인 탐구에 열심인 반면 요가는 헌신적인 실천과 정신 수련의 본질에 대하여 논의한다. 요가의 목적은 개아가 물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물질의 가장 고차적인 형태는 마음(citta)이며, 요가는 사람의 마음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잇는 과정을 확립한다.

  • 심리학
  • 샹키야가 '마하트(mahat, 大)라고 부르는 것을 요가는 '칫타(citta, 心)'라고 부른다. 비록 그것은 지성, 자아의식, 그리고 의근(意根)을 포함하기 위하여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프라크리티의 첫 산물이다. 그것은 3구나에 지배되며, 각 구나들의 현저한 정도에 따라서 여러 가지 변형을 겪는다. 비록 그것은 자아의 반영에 의하여 의식적이 된다 할지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비의식적이다. 그것은 감각들을 통하여 대상에 의하여 영향 받을 때, 변형을 겪는다. 그것에 반영된 푸루샤의 의식은 그것이 경험하는자 라는 인상을 지니게 만든다. 사실 칫타는 자아(관찰자)가 반영을 통하여 목격자로 존재하는 광경이다. 칫타가 푸루샤 자체만큼 청정하게 될 때, 푸루샤는 해탈을 얻는다.
    칫타는 변형될 수 있으나 그 자체가 보이는 것을 지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질적으로 지각력이 없기 때문이다. 칫타가 그 자체에게 주어지는 것을 지각하게 하는 것은, 그것에 작용하는 자아의 반영이다. 설사 칫타는 끊임없이 변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지식은 일정하다. 왜냐하면 진정한 인식자인 자아가 일정 불변하기 때문이다. 윤회의 삶은 욕망과 열정의 산물이다. 에고의 삶은 불안하고 불만족스러우며 사실상 다섯 가지 번뇌에 지배된다. 다섯 가지 번뇌의 첫째는 무지(avidya), 즉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고, 부정한 것을 청정한 것으로, 불쾌한 것을 즐거운 것으로, 그리고 자아가 아닌 것을 자아로 착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아집(asmita), 자기자신을 도구에 불과한 육체를 마음과 잘못 동일시하는 것이다.
    셋째는 유쾌한 것에 집착하는것(raga)이며, 넷째는 불쾌한 것을 싫어하는 것(dvesha)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째는 생(生)에 대한 본능적인 의지와 죽음에 대한 공포(abhinivesha)이다. 해탈은 자아와 칫타의 관계를 자르는 것에 놓여있다. 자아가 칫타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자아는 그 본래의 토대로 물러나게 되며, 이로써 걱정과 목적을 여의게 되며, 인격성을 떨쳐버린다. 본래 상태의 푸루샤는 단지 마음의 작용을 목격하는 자이다. 마음(citta)이 활동적일 때 자아는 여러 상태들을 경험하는 것처럼 보이며, 명상 속에서 마음이 잠잠해질 때 자아는 그 자체의 진정한 형태로 머문다. 마음이 명상의 한 대상에 몰입되고 전적으로 삿트바로 충만해 있을 때, 그것은 전일된 마음(ekagra)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마음의 가장 위대한 노력을 위하여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마음의 일어남이 저지되었을 때, 그것은 제어된 마음(niruddha, 유상삼매)이다. 전일된 마음과 제어된 마음 상태에서는 비록 잠재 인상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할지라도, 심리적 발현의 흐름은 억제된다. 비록 정신 집중은 삼매의 상태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할지라도, 요가 심리학자들은 정신집중이 모든 마음 상태에 공통적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개개의 모든 심리적 발현(vritti)은 잠재 인상(samskara)을 남기며, 기회가 되면 의식적인 상태로 나타날 수 도 있을 것이다. 요가 수행자는 심리적 발현들을 제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미 형성된 성향들을 제거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성향들은 다시 발현할 것이다. 마음이 자체의 심리적 발현들을 모두 떨쳐버릴 때, 그것은 균형상태(samapatti)에 있다고 말하며, 그것에게 주어지는 대상이 어떤 것이든, 그 대상이 인식자든 인식의 대상이든 아니면 인식행위든 그것의 형태를 띤다.
    균형상태의 마음은 마치 그 자체의 본질인 것처럼 대상의 본질을 띤다. 깊은 사색을 수반하는 균형상태(savitarkasamapatti)에서는 말과 대상과 의미(shabdarthajnana)가 뒤섞인다. 우리는 또한 반성적인(savicara) 균형상태와 비반성적인 균형상태를 지닌다. 비반성적 균형상태는 잠재적이거나 현시적인 형태들로 특징지어지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미세한 요소들과 관련된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 통일성에 제어될 필요가 있는, 갈등하는 세력들의 전쟁터이다. 만족을 추구하는 욕망, 자기 보존과 자기 번식의 욕구와 같은 생명에 관한 충동들이 있으며, 이런 요소들은 쉽게 제어되기를 거부한다. 정신 집중에 대한 장애들은 여러 형태의 그릇된 생각, 이른바 무지(avidya), 이기심(asmita), 집착(raga), 혐오(dvesha), 그리고 생(生)에 대한 애착 등으로 일컬어진다. 그밖에도 건강하지 못함, 무기력, 의심, 부주의, 나태, 속된 마음, 그릇된 지각, 집중하지 못함 등이 있다.

  • 올바른 지식수단
  • 감각적 자각, 추론, 그리고 경전의 증언이 세 가지 올바른 지식수단으로 받아들여진다. 감관 들을 통하여 칫타가 어떤 외부 대상에 의하여 영향을 받을 때, 우리는 감각적 지각을 지닌다. 마음의 변형은 대상과 직접 관련된다. 공상(vikalpa)은 그것에 상응하는 적극적인 사실을 전혀 지니지 않는 형태의 개념이다.
    적극적인 사실을 지니지 않는 다는 것은 말로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수면(nidra)은 각성상태와 몽면 상태의 변형들이 전혀 없는 마음의 변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마음의 변형(vritti)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잠에서 깨어날 때 자기가 취한 수면의 형태에 대한 기억을 지니기 때문이다. 요가는 감각적 지각, 추론, 경전의 증언을 통하여 얻은 지식이 완전히 절대적으로 타당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요가는 상키야와 마찬가지로 경험적 지식은 뿌루샤와 붓디 사이의 그릇된 혼동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물 자체에 대한 진실은 오직 요가 아사나를 통한 육체적 정신집중을 통해서 획득 될 수 있다.

  • 요가의 기법
  • 자아의 실체는 마음의 객관적인 사용을 통하여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과 행위가 우리의 신성한 본질을 은폐하는 심리적인 토대 아래로 꿰뚫고 내려가서 마음의 작용들을 제어함으로써 파악된다. 비록 순수 영혼의 씨앗은 우리 각자 속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의 의식에 의하여 인지되지 않는다.
    우리의 의식은 그 외의 다른 대상들을 따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식이 방향 수정을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엄한 수련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요가 철학에 의하면, 마음 상태들에 대한 필수적인 제어는 욕망의 극기와 단련을 통하여 가능해진다. 한편 욕망의 극기와 단련은 확고부동한 사유를 지향하는 노력과 관련되며, 확고부동한 사유는 청정한 행위, 절제, 지식과 믿음에 의하여 얻어진다. 무집착(vairagya)은 보이는 혹은 나타난 대상들에 대한 갈애를 떨쳐버린 자에 의하여 소유되는 의식이다. 이러한 경지에 이른 사람은 천계의 즐거움에 대해서든 세속의 즐거움에 대해서든 전혀 무관심하다. 자아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는 최고 형태의 무집착에서는, 어떤 대상이나 그것이 지니는 속성에 대한 욕망에 지배당할 위험이 전혀 없다. 이것은 궁극적인 자유로 인도한다. 인간 유기체에서 우리는 푸루샤 외에 물질적인 육체, 생명력, 심리적인 요소들을 발견한다.
    푸루샤는 썩어 없어지는 살과 부단히 움직이는 마음의 장막 뒤에 은폐되며, 이 모든 것들은 요가 수행에 장애로 작용한다. 몸과 마음의 긴밀한 연관이 강조된다. 왜냐하면 "고통, 낙담, 육체의 허약, 들이마시는 숨과 내쉬는 숨은 주의산만의 부속물이기 때문이다." 비록 육체적인 건강이 인생의 목적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인생의 본질적인 조건들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인간을 물리적인 기계로 간주할 수 없다. 육체는 정신적인 삶의 표현을 위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요가는 물질적인 기초를 포기하는 대신, 그것을 정신적인 문제의 일부로 수용한다. 장애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요가는 금계(禁戒, yama), 권계(勸戒, niyama), 좌법(坐法, asana), 조식(調息, pranayama, 호흡조절), 제감(制感, p-ratyahara : 감각들을 본래의 기능에서 거두어 들이는것), 응념(凝念, dharana), 선정(禪定, dhyana), 삼매(三昧, samadhi)로 이루어진 8단계 실수법(實修法)을 제시한다.
    뒤의 세 단계는 직접적 혹은 내적인(antaranga) 수행이며, 이에 비하여 앞의 다섯 단계는 간접적 혹은 외적인(bahiranga) 준비 단계이다.

파탄잘리 요가수트라 8단계

  • 야마(Yama : 금기(禁忌)사항) : 사회적 규범
  • 1) 아힘사(Ahimsa) : 비폭력. 불살생.
    불살생(不殺生)을 실천하는 삶은 모든 것에 대한 적의가 없다. 죽이거나, 파괴하거나, 발로차거나, 때리는 폭력이외에도 권력을 남용하여 남에게 해를 주거나, 타인을 무시하고 비웃거나, 험담하거나, 어려움을 보고도 무관심하거나, 나쁘게 되기를 바라는 것 모두 의식의 폭력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기본적인 생명(生命)의 영위를 위해 다른 생명을 취하게 되는 것은 자연적 질서의 범주에서 이해되어야하며 선택과 배려의 마음으로 기본적인 생명유지를 위한 식생활과 자기방어는 도덕적인 개념의 살생은 아닌 것이다. 모든 생명체는 보다 높은 곳으로 진화하려는 본질적인 욕구가 있기에 수행자는 다른 생명의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에너지를 보다 고등적인 일에 사용하고 승화시킨다면 살생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취미나 오락으로 다른 생명을 취하거나, 그것을 먹고 인간답지 못한 삶을 거듭하는데 쓰인다면 그 생명의 희생을 격하(格下)시키는 것이므로 살생의 업(業)을 받게 된다. 따라서 진화(進化)라는 공동목표를 향해 그들을 대신하여 내가 나선 것은 그들을 무시하거나 죽이는 것은 아니며, 그들을 대변한 더 큰 희생으로의 길이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요가(Yoga)는 모든 생명들과 화합하고 그것과 자신의 적의를 소멸시키고 상호 의존하는 수행인 것이다.

    2) 사트야(Satya) : 진실(眞實). 성실(誠實).
    거짓말과 거짓행이 없는 진실하고 성실한 삶의 자세를 말한다. 이 계율을 지키는 수행자는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추진력을 갖게 되며,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이 참됨 속에서 실천하는 세상의 주체자(主體者)가 된다. 언어(言語)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나타내며 뜻을 전하는 힘을 가진다. 거짓말은 자기의 마음이 아닌 것을 전하기에 오해와 고통의 씨앗이 되는 것이며, 남을 속이는 것 이외에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되어 결국 되돌아오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것은 수행의 길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뒷걸음질이고 앎의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요소가 된다. 진실을 왜곡시키는 거짓말과 거짓행동은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 단순한 윤리적 차원에서의 금지 계율(戒律)이 아니며, 말의 순화와 수양이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근본적 품성(品性)으로써 진실과 성실함은 지속적인 삶의 범위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인 힘이 된다. 요가의 스승(Guru)들은 만약 거짓을 말해야 한다면 침묵(沈?)을 지키라고 권한다. 침묵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각자의 판단에 따라 흐르고 소멸되기 때문에 가장 큰 긍정이고 부정이 된다. 또한 수행자의 진정한 모습은 침묵의 힘에 있다고 고전의 철학서들에 나타난 스승들은 공통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3) 아스테야(Asteya) : 불투도(不偸盜).
    남의 소유물을 훔치려는 어떠한 마음이나 수단을 행하지 않아야 함을 요가 수행자의 기본 덕목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리적 힘 또는 권력이나 재력(財力)등으로 남의 것을 자기(自己)것으로 취하지 않는다. 그러한 마음은 집중을 방해하며,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려는 이기적인 성취는 일시적인 것이며 다른 사람의 손해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으로써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마음이 불안하고 그 결과를 받게 된다. 무조건 받기를 기대하는 것 또한 탐심(貪心)이며, 주고 받는 힘의 균형을 깨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함이다.

    4) 아파리그라하(Aparigraha) :
    불탐심(不貪心). 요가 수행자는 자기 생명유지에 꼭 필요한 만큼만 원하고 취하라는 덕목으로써 탐욕의 종말은 거짓과 도둑질로 나타나기에 무릇 수행자는 겸손하고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남이 나에게 호의를 갖는다하여 좋아하거나 그러기를 바라는 것은 정신적 탐욕이나, 재물을 모아서 쌓아 두려는 물질적 탐욕, 불로소득하려는 탐심도 죄업(罪業)이 되어 수행자가 벗어야하고 지우려하는 카르마(Karma)를 다시 쌓게 되는 헛걸음이 되고 마는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그 마음의 무게에서 벗어나 가벼운 심신으로 진실한 자신을 성찰하며 성실한 태도로 꾸준히 자신을 닦고 실천하는 생활에서 필요한 만큼의 물질은 자연적으로 얻어진다.

    5) 브라마차르야(Brahmacharya) : 정결(精潔)
    고전(古典) 요가경전에서는 정력의 남용은 죽음을 부르고 정액을 몸속에 보존하면 몸에서 향기가 나고 모든 지력(知力)이 빛난다고 적고 있다. 요가 수행자의 절제하는 삶은 성적인 본능까지도 다스릴 수 있어야 하며, 그리하여 누적된 힘을 구도와 지성의 개발에 쓰고 잘못된 것과 싸우는 용기와 지구력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 니야마(Nyama : 권장(勸奬)사항 : 개인적 규범
  • 1) 사우차(Sauca) : 청정(淸靜)
    ① 육신(肉身)의 정화 - 물과 빛과 열과 공기(空氣)등의 자연을 이용하여 몸을 변화시키고 청소하며 식생활과 자세의 안정, 단식으로 육체를 정화한다.
    ② 정신(情神)의 정화 - 욕망, 증오, 탐욕, 오해, 허영, 무지, 질투, 망상, 태만(怠 慢)등의 마음을 순화(純化)시켜 참회하고 성화(聖化)시켜가는 것이다.
    ③ 언어(言語)의 정화 - 자기 내면의 표현이 말이다. 따라서 순화된 영혼에 맞는 말을 사용한다.

    2) 산토샤(Santosa)
    만족(滿足) 생명유지에 필요한 것 이상을 구하지 않는 만족을 뜻한다. 불만보다는 매사(每事)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며 대상의 어두운 면 보다는 밝은 면을 깨닫고 즐겁게 사는 태도를 의미한다. 만족은 자연에 순응하며 욕심을 내지 않는 마음이다.

    3) 타파스(Tapas)
    고행(苦行) 땀을 흘리는 열성으로 깨달음을 위해 이기적이 아닌 것에 스스로 택한 세속(世俗)에 대한 현실에 대한 즐거움을 버리는 길이다. 습관화되지 않은 것을 찾아 행하는 것이 고행이며, 자아완성을 위해 과거의 카르마(Karma)를 지우려는 노력이다. 심신(心身)에 새겨진 것이 강할수록 그것에 투자가 컸던 것이므로 그것을 바꿀 때 고통이 따르는 이치이다. 고통은 두 가지가 있다. 되살리기 위한 재생(再生)으로 인도하려는 고통이 있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고통이 있다. 갱생(更生)과 깨우침으로 인도하는 고통이 고행의 길이다. 고행으로 심신(心身)의 더러움이 정화되어 초자연적인 능력이 생긴다.

    ※ 고행의 종류
    ① 육체(肉體)의 고행 - 절제와 비폭력 자세정립이 기초이다.
    ② 언어(言語)의 고행 - 거짓말 하지 않고 진실한 말을 하는 것과 침묵이 기초이 다.
    ③ 의식(意識)의 고행 -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여 진리에 이르려는 명상이 기초이 다.

    4) 스바디야야(Svadhyaya) : 학습(學習)
    어제의 모든 것들은 오늘의 그것이 아니며 오늘은 새로운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계속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것이므로 이러한 학구(學究)가 끝나는 것이 죽음인 것이며 인간의 행복도 새로움을 경험하는 느낌인 것이다.

    5) 이스바라-프라니다나(Isvara-pranidhana) : 염신(念神)
    자기 내부적 신성(神聖)인 이스바라(Isvara : 요가의 자재신(自在神)를 명상한다. 자기의 이기적 마음을 비우고 더 높은 차원의 경지를 추구한다.

  • 아사나(Asana) :좌법(坐法), 자세(姿勢)
  • 요가수트라(2-46)에서 좌법의 효과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좌법은 안정되고 쾌적한 것이다」라고 할뿐 그 종류에 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단지 좌법의 효과를 요가수트라(2-47)과 요가수트라(2-48)에서 가볍게 보충하고 있을 뿐이다. 즉 안정되고 쾌적함이 얻어지는 것은 일상적인 삶의 노력들을 늦추고 마음을 끝이 없는 것(하늘 또는 참자기)에 두고 (合一)있음 때문이며, 이러한 것을 연습하면 상대적인 상황(춥고 더움 등등)에 괴로움을 당하지 않는다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적인 산란심과 동요된 행동의 정지적 거부이며, 그것을 통해서 상대적 요소의 어느 한 쪽에 대한 편중으로 야기되는 괴로움(苦)을 벗어나고 전체성을 열어 삶의 편향성으로부터 초월한다는 것이다.
    요가수트라(3-46)에서는 「육체적 완전함은 아름다운 모습과 우아함과 힘셈과 깨지지 않는 굳셈이다」라고 하여 육체적 건강과 부분에 치우침이 없는 완전함을 요가행자들이 확립하도록 암시하여 육체요가의 발전을 예고하고 있다.

  • 프라나야마(Pranayama) : 숨 고르기, 기운(氣運) 다스리기
  • 요가수트라(2-49)가 호흡법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다. 「좌법에서 숨을 멈추는 것이 조식이다」라 하고 요가수트라(2-50)에서는 조식의 진행과정을 설하고 있다. 즉 「조식은 호식(呼息)과 흡식(吸息)과 지식(止息:Kumbhaka)으로 되어 있고 장소, 시간, 수(數)에 의해 조절되어 길고 미세하게 된다」이다. 여기에서 장소에 의한 조절이란 전신에서 볼 때 어떤 곳의 느낌에 따라서 조절함이고, 시간에 의한 조절이란 숨쉬고 참는 시간적인 조절이며, 수에 따른 조절이란 숨쉬는 횟수에 따른 조절이다. 이러한 조식이 이루어지면 호흡은 점차 더욱 길어지고 미세하게 가늘어 진다는 것이다. 요가수트라(2-51)부터 요가수트라(2-53)까지가 조식의 효과이다. 즉 조식이 수련되면 내부와 외부가 합일하여 내외의 대상에 대한 구분이 없어지는 초월이 이룩되고 참된 이해의 능력을 억압하고 있는 집착의 번뇌가 소멸되며 정신집중이 잘된다. 「호흡으로 마음이 깨끗해진다」요가수트라(1-34).

  • 프라탸하라(Pratyahara) : 육체적인 감감의 제어(制御)
  • 요가수트라(2-54)와 요가수트라(2-55)가 제감에 대한 것이다. 「여러 감각기관이 각각의 대상과 결합하지 않게 함으로써 본래의 마음상태와 연결된다. 따라서 감각기관들이 자기마음대로 순종하는 힘이 생긴다」라고 가르치고 있다. 16세기경에 나온 게란디-상히타라는 요가경전의 제 4장 1부터 5까지가 제감법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 여기에서는 감각·시각·청각·후각·미각 등의 5감각을 참된 자기의 지배하에 두려는 수련법으로 외부대상에 끌리는 마음을 회수하고 칭찬이나 비난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을 원위치 시키고 좋거나 나쁜 모든 냄새로부터 일어나는 마음을 회수하여 맛으로 인한 마음을 되돌려 참된 자기의 지배 하에 두도록 되어 있다.
    Pratyahara라는 말은 「되돌려 온다」의 뜻이며 본래의 마음 즉, 참된 자기와의 직관적 연결을 맺으려는 수련이다. 제감을 통해 사유(思惟)의 기능의 반조(反照)가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다. 즉, 감각을 내면으로 되돌려 참된 자기에게 되비추어 봄으로써 모든 사실들을 알아내는 능력을 얻으려는 접근이다. 요가수트라에는 별도의 수련방법이 기록되고 있지 않으나 호흡수련, 명상수련, 좌법과 여러계행 등이 모두 제감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된다. 제감이 육체적 수련으로 보이지만 응념과 동시에 일어나는 심리적 수행의 시작이다.
    금계와 권계의 윤리적이고 구도적인 단계와 체위와 조식과 제감의 육체적 수련 단계들은 모두 다음 단계인 심리적 수련(응념·정념·삼매)의 준비과정이다.

  • 다라나(Dharana) : 정신의 집중(集中)
  • 요가수트라(3-1)에서 「응념」이란 마음을 한곳에 매는 것이다」라고 한다. 요가수트라(1-32)에서는 「마음의 산란함을 없애기 위해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하는 수행을 해야 한다」고 하여 응념의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모든 것이 응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요가수트라(3-16에서 52까지)의 초능력 개발에서 총제하는 대상은 모두 응념의 대상이 된다. 요가브하샤(3-1)에 의하면 「응념은 자신의 배꼽·심장·코끝이나 그 밖의 외부대상이다」라고 하는데 이는 구심적 정신집중이다.

  • 디아나(Dhyana) : 집중이 지속된 의식, 정려(靜慮), 선정(禪定), 명상(瞑想)
  • 요가수트라(3-2)는 「정려는 응념되고 대상에 의식작용이 한결 같다」이다. 정려의 대상은 응념의 대상과 같지만 그 심리 상태는 응념과 정반대이다. 그 대상에 대한 의식의 작용이 확대되어 가는 생각의 흐름이다. 즉, 정려는 구심적인 응념에 반대되는 원심적인 사고의 흐름이다. 요가수트라(2-11)은 「번뇌는 정려에 의하여 제거될 수 있다」이다. 정려를 선정(禪定)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Dhyana를 한자로 선나(禪那)로 번역하였다가 나(那)는 없어지고 선(禪)으로 바뀌었으며 선은 일본에 의해 유럽에 소개될 때 젠(Zen)으로 바뀌었다. 정(定)은 상대성의 합일(合一)을 말하며 선과 정이 모여서 선정(禪定)이 되었다. 따라서 정려가 그 근원이다.
    정려는 다각적인 이해를 하나의 대상을 중심으로 일으키는 의식확장명상이다. 서구적이 명상은 대상에 대한 느낌과 경험의 분석 또는 정돈을 통해 그 가치정도를 파악하는 수준이지만, 요가의 명상(Dhyana)은 그러한 것들을 동시적으로 포함하면서 종국에는 그 대상의 본질로 침투하여 주관적인 생각은 없어져 버리고 대상에 동화되므로 보이지 않는 면까지도 직관으로 정확히 감지하여 알게 된다.
    요가명상의 특징은 기초단계인 접근이 지식을 넓히거나 감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고 심작용을 억제하는 심리현상이다. 그러한 이유는 편견이나 오류에 의한 잘못된 이해의 경험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일반적 모순을 제거하려는 적극적인 수행의 접근 때문이다. 그 대상에 함축되어 있는 자연의 진리를 보다 바르게 감지하여 이해하려는 직관의 인식을 유도하는 수행이 요가이다. 따라서 심작용의 지멸은 수단인 것이지 요가의 목표일 수 없다. 요가의 목표는 삼매를 통해 얻어지는 참된 지혜이기 때문이다.

  • 사마디(Samadhi)
  • 삼매(三昧). 자의식과 우주의식이 육체에서 혼연일체(渾然一體)된 무심무상(無心無想)의 경지 요가수트라(3-3)은 「삼매는 정려의 대상만 마음속에 빛나고 그 자신은 없어진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이다. 객체만 있고 주체는 사라진 상태인데 이것은 자기 마음에 대상이 주는 사실성만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무의식상태가 아니라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이 하나로 묶여 있는 합일상태가 삼매이다. 이기적으로 집착된 자기 마음의 작용 즉, 편협적인 체험에 의한 편견적인 마음의 작용(저것을 소유하면 얼마나 좋을까, 가치 높은 것이구나, 무섭다, 아름답다....)은 사라져 버리고 그 대상의 사실성에 몰입되어 그 대상의 성질만 빛나고 있는 경지를 삼매라 한다. 다시 말하면 자신다운 심작용이 없는 깨끗한 자기에게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일체의 진리가 자리 잡은 상태이다. 이때는 참된 자아(Purusa)가 븟디(統覺)의 사유기능을 통해서 직관적인 앎을 주므로 그 대상의 진리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종류의 자극에 대한 무감각 상태이나 최면적인 마비상태와는 다르며 보다 진실하고 완전하게 그 대상을 안다. 비록 요가수행으로 참자아를 깨달아 해탈하고 신인합일(神人合一)에는 이르지 못할지라도 그러한 목표적 수행은 자연에 대한 다채로운 인식의 종합을 실현해가는 것이 된다. 따라서 전체성(全體性)의 개화(開花)를 도출시키는 성장이 삼매의 수련효과이다. 응념과 정려와 삼매의 관계는 거의 연속적인 전개이므로 나누기가 어렵다. 따라서 이 셋을 합하여 총제(總制 : Samyama)라고 한다. 함께 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려의 시작에서부터는 주관과 객관의 상대적 대립과 상응이 반복되며 정려가 깊어지면 정(定)에 이른다. 즉 선정(禪定)이 된다. 이때부터가 곧 삼매이다.
    즉, 주객의 대립이 아닌 합일에 이른 것이 삼매다. 이때에는 반성적사고(反省的思考)가 사라지고 직관(直觀 : Anschauung)이 일어난다. 직관은 일반적으로 추리, 판단, 사고작용을 첨가하지 않고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작용이다. 판단, 추리, 사고 등은 주관과 객관이 서로 대립하는 반성적의식(反省的意識)으로 성립되지만 직관은 주객의 결합 즉, 주객의 미분화(未分化)된 상태의 의식으로서 자기 자신의 주관은 없고 객관의 의식만 있는 상태를 뜻한다. 대립을 초월한 합일의 전체적 열림에서 감지되는 인식방법이 직관이다. 사고가 분석적, 추리적, 이론적이라면 직관은 종합적, 구체적, 실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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